2009년 11월 19일
Losers
요새 뭐 루저 논쟁이 한창.. 에서 조금 지났나? 싶은데.
그냥 뭐 내 생각은 왜 꼭 제작진이 패널도 저런 애를 선정해가지고 얄궂은 보통 여자를 욕먹이나 하는 거였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녀가 보통의 건전한 사고를 가진 대학생이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는데 말이다. 덕분에 '외국인들에 비해 지나치게 남자 의존적이고 계산적인 한국 여자들' 이라는 결론이 적어도 그 방송에서는 내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한국 여자의 한 사람으로서 좀 불쾌했달까.
링크에 건 김규항씨의 글을 보면서, 사실 스펙논쟁에 사람들이 동감해서 묻혔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 부분은 좀 생각할 여지가 있는 것 같아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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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대놓고 외모를 상대 성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말하거나 경쟁력 없는 외모를 가진 상대 성에 대한 경멸을 공공연히 표시하는 건 남자만의 권리였다. 이를테면 경쟁력 없는 외모를 가진 여자에 대한 경멸은 오늘 한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의 가장 핵심적인 소재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지존이라는 <개그콘서트>엔 아예 그런 캐릭터만 전담하여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여자 코미디언이 있으며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 여자를 보면서 웃는다.
‘180센티미터 이하의 남자는 루저’라는 말은 그 공고한 체제에 대한 도발이었다. 그 여대생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 내용이 바람직하든 않든, 매우 중요한 사회적 도발을 감행한 것이다. 같은 이야기도 미국의 마돈나가 하면 사회적 도발이 되고 한국의 여대생이 하면 골 빈 소리가 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 여대생의 사회적 도발은 그뿐이 아니다. 그 여대생은 오늘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다시 한번 생생히 알게 해주었다.
말하자면 그 여대생은 우리가 사람을 됨됨이가 아니라 스펙으로 평가하며, 그런 사실을 더 이상 숨기려 들지 않을 만큼 닳고 닳은 사람들임을 알게 해주었다. 양식 있는 사람들, 말하자면 오늘 이명박 반대를 외치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사람들은 내가 왜 ‘우리’에 포함되는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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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뒷부분엔 이 내용을 정치적으로 끌고가는 부분이 있지만 그건 일단 뒤로 제쳐두고.
예컨대 나는 양성 평등의 시대를 보통 남자들만큼은 사회적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전통적으로 남자들의 성역할이라고 보여졌던 사회적 지위 및 경제적 능력(?)을 뭐 지금은 학생이지만 앞으로는 가지게 될 거라고 생각하며 ^^; 모두가 알겠지만 내가 여자라고 남들보다 덜하거나 도움을 받으며 살아오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군대 문제는, 3년씩이나 가는 건 좀 힘든 것 같고 (여자는 신청시 최소 3년), 여성에게도 전문연구요원 제도 있으면 하고 싶다는 생각은 무척 많이 했다. (이 얘기는 아마 많은 사람들한테 했던 것 같다.) 이건 물론 박사과정까지 하면서 4주 훈련만 가도 군필이 되는 메리트가 있기 때문에 한 생각임과 동시에, 나는 그만큼 당신들과 똑같은 사회적 역할을 해냈다고 주장하고 싶은 바이기도 하다.
어떻게보면 '루저녀'와의 정반대 케이스로, 나는 내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하여 역차별을 더욱 신경썼던 것 같다. 즉, 그동안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졌던 특혜를 누리기보다 남자들이 하는만큼 하고 그들만큼 권리를 갖고 싶다 - 라는 거다. 그렇지만 정작 내가 자라오고 길들여진 사회적 이념은 나 스스로 남녀를 차별하게 만드는 족쇄가 된다.
그 사회적 이념의 하나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문제이다. 못생긴 여자를 비하하는 개그를 보면서는 웃고, 180이 안되는 남자를 루저라고 부르는 사람에 대해선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는 나도 어느새 그러한 사회 통념에 길들여져있었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다른 예로, 신랑과 똑같이 학생일 때, 아침 식사를 내가 챙겨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만큼 다른 일을 내가 더 하더라도, '남편 아침밥도 안 해주는 여자'가 되어버린 관습적 죄의식이 생겨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남자들의 전통적인 성역할에 파고들어가 그만큼의 일을 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집에서는 전통적인 여자의 성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에 대하여 죄책감을 느끼다니, 남자들 유리한대로의 사고를 여자인 내가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변해가는 성역할에 따른 인식 또한 변해야 하는데, 우리 세대의 성역할은 남자들과 거의 동등해져가고 있지만, 부모님 세대와 남자들의 인식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고, 그 인식 안에 여자들 또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대부분인 것 같다. 군대식으로 말하자면 꼬인 군번이라고나 할까.. -.,- 모든 지나간 세대가 그렇듯, 변화하는 사회상에서 일어나는 가치관의 혼란과 부조리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조금만 더 이해하고 그 격차를 좁혀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by | 2009/11/19 17:20 | 트랙백 | 덧글(3)
새벽에 간신히 일어나서 본 프리스케이팅이 너무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생각해보면 최고의 플레이는 올림픽을 위해 남겨두는 편이.. ㅎㅎ



